UFC 웰터급 챔피언 로비 라울러를 두고 '신기한' 파이터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기의 스타일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행보는 정말 너무나 특이해 신기할 정도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유명한 선수들은 데뷔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신인 시절부터 꾸준히 성장하며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모든 파이터들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라울러는 정상적으로 성장한 경우와 차이가 있는 인물이다. 시작은 눈에 띄었지만 성장한 이후 한계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2001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라울러는 불과 6개월 만에 4연승을 쌓으며 곧바로 UFC에 데뷔했다. 옥타곤에 입성하자마자 3연승을 질주하며 순조롭게 성장하는 듯 했다. 그러나 2003년 UFC 42에서 피트 스프럿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약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4년 성적 부진으로 UFC에서 퇴출된 뒤 한동안 중소단체에서 활동했던 라울러는 다시 상승세를 타며 2007년 메이저단체인 엘리트XC에 입성했다. UFC 퇴출 이후 성적은 8승 1패 1무효로 꽤 준수했다. 그리고 2009년 스트라이크포스에 진출한 이후 승과 패를 반복했다. 스트라이크포스에서 그는 멜빈 마누프, 맷 린들랜드, 아드란 아마고프를 이겼고 제이크 쉴즈, 헤나토 소브랄, 호나우도 소우자, 팀 케네디, 로렌즈 라킨에게 패했다.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 UFC에 이어 엘리트XC, 스트라이크포스 등의 메이저 단체에서 활동하며 강자들과 경쟁한 것만 해도 선수로서 큰 성과다. 앞에서 거론한 파이터 외에도 제이슨 밀러, 에반 터너, 닉 디아즈 등 당시 기량이 출중했던 파이터들과 대결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정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메이저단체에서 경쟁할 수준은 되지만, 상위권 도약이 어려워 보이는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라울러였다. 가능성이라는 부분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선수였던 것이다. 스트라이크포스에서 승과 패를 반복하며 남긴 3승 5패의 성적이 그의 한계를 잘 나타낸다. 2012년까지 남긴 전적은 19승 9패 1무효, 주인공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라울러는 2013년 UFC에 진출하며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웰터급으로 내리고 옥타곤에 뛰어든 라울러는 데뷔전에서 조쉬 코스첵을 TKO로 잡아내더니 바비 볼커에게 KO승을 거뒀고 급기야 컨텐더였던 로리 맥도널드까지 이기며 단숨에 강자로 부상했다.
그 결과 타이틀샷을 얻은 라울러는 조니 헨드릭스와의 타이틀 결정전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팽팽한 대결을 펼치고 아쉽게 패했으나 제이크 엘렌버거와 맷 브라운을 꺾고 지난해 말 다시 타이틀에 도전, 명승부 끝에 설욕에 성공하며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에게 내가 진정한 파이터라는 것을 보여줬다. 나는 싸우기 위해 이곳에 온다. 나는 KO를 노리고, KO를 내기 위해서 계속 전진한다"고 옥타곤 안에서 소리쳤다. 지난 7월 UFC 189에서는 강력한 도전자 로리 맥도날드를 제압하고 1차 방어에 성공하는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데뷔 후 11년간 적당히 경쟁력 있는 선수로 활동했던 그가 1년 사이 갑자기 능력치가 향상돼 다른 단체도 아닌 UFC의 챔피언이 된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행보였다. 신기하다고 밖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라울러는 "난 이런 시간이 올 것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믿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어야 하고, 무슨 이유로 나는 최근 2년 사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며 "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준비가 돼있었다. 3년 전 내가 미디어 쪽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세계챔피언과 UFC 파이터가 될 준비가 돼있었다. 난 사람으로서 파이터로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올해 초 미디어 스크럼에서 밝힌 바 있다.
라울러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챔피언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었다. 지난 10월 UFC 195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나는 항상 괜찮은 선수였지만 가끔은 기량을 펼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정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계속 전진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오는 1월 3일, 라울러는 '내추럴 본 킬러' 카를로스 콘딧을 상대로 2차 방어전을 갖는다. 상대인 콘딧은 웰터급 랭킹 4위로 피니시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결정력 높은 타격가다. 총 전적은 30승 8패, 최근 경기에서는 티아고 알베스를 꺾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