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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 불리함에 포기도 생각"…함서희가 흘린 눈물의 의미

 

서울에서 뜨거운 밤을 보낸 지 나흘이 지났다. 함서희는 지난 토요일 옥타곤에서 첫 승리를 경험하고 보너스까지 타내는 겹경사를 맞았다.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무조건 즐길 시간.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승리 직후인 바로 지금이다. 누가 뭐래도 이때만큼은 '내 세상'이다.

그러나 함서희는 매일 병원을 다니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집에만 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 인사에 "시체놀이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 코트니 케이시와의 경기에서 많은 타격을 허용, 얼굴이 많이 망가져 방 안에서 잠만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함서희의 얼굴은 여전히 그날 벌인 사투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붓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살갗이 벗겨지고 피멍이 맺힌 상처는 수두룩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함서희는 "조앤 칼더우드와 맞붙은 지난 데뷔전이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가장 많이 맞은 경기였으나 이번에 그것을 넘어섰다. 정말 많이 맞았다"며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긴 한데 잠을 자는 것조차 힘들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도 저쪽으로 돌려도 욱신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며 대화의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집에서 누워서만 보내는 이 시간에 감사해 한다. 데뷔전에서 패했던 함서희에겐 이번 경기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2연패는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성적에 포함되는 터라 걱정이 많았다. "이제 걱정 없이 두 다리를 뻗어 편히 잠을 잘 수 있고 감독님과 창현이(남자친구이자 동료 선수)의 걱정거리를 덜어줘 홀가분하다"는 것이 함서희가 말하는 이번 승리의 가장 큰 수확이다.

입장할 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등 자신감을 보인 함서희였지만 불안한 마음은 내심 있었다. 신장 차이를 개의치 않는다던 경기 전 인터뷰가 그녀의 솔직한 마음은 아니었다. 자신의 키보다 13cm나 큰 170cm는 위협적인 수치였으며, 함서희는 바로 전 경기에서 이미 10cm의 벽을 실감한 바 있다. 함서희는 아톰급 시절에도 신장이 작은 편이었고 케이시는 밴텀급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스트로급에서 가장 큰 편이다. 냉정히 보면 두 선수의 체격 차이는 한 체급 이상이다.

"솔직히 말해서 신장 차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진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되기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올라갔다"고 털어놓았다. 춤을 춘 것은 흥에 겨워서가 아닌, 몰입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다.

경기에서 함서희는 초반 고전했다. 큰 신장을 이용한 케이시의 효과적인 아웃파이팅에 해답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챔피언 요안나 예드제칙과 훈련했다는 케이시는 지난 경기보다 타격이 더 좋아졌다는 느낌도 들게 했다. 그러나 함서희는 2라운드 들어 조금씩 분위기를 반전시키더니 결국 흐름을 뒤집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격차가 많이 난 것은 아니었다. 쉽지 않은 경기였다.

"말이 13cm지. 아아. 정말 높고 멀었다. 체육관의 키 큰 남자 선수들을 파트너로 두고 준비한다고 했는데, 스파링과 경기는 천지차이였다"고 토로한 함서희는 "1라운드를 잘 못했다기보다는, 느낌이나 거리감 등 경기 감각을 찾고 상대를 파악하느라 신중했던 것 같다. 그리고 1라운드 종료 후 잊고 있었던 전략을 다시 잘 짚어주신 감독님 덕에 흐름을 찾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너무너무 놀랐다. 한국 선수니까 응원은 해주겠지 했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입장할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경기를 치르는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순간 행복했다. 지금껏 가장 길었던 등장로가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네티즌들의 말대로 정말 라스베가스나 브라질에서 열린 대회 같았다. 그 함성은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들고 없는 힘도 나게 했다. 만약 졌어도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끝까지 집중해서 싸운 점은 만족하는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경기 후 승리가 확정되자 함서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안 울려고 했지만 복받치는 다양한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눈물을 흘리게 만든 주된 인물은 팀매드 양성훈 감독, 사적으로 함서희의 형부다. 첫 경기 패전 이후 이번에 최장신 선수와 붙게 된 것을 양 감독이 안타까워했고, 유독 걱정을 많이 한 것을 함서희는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선수로 활동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도, 이렇게 힘들었던 적도, 이렇게 관심을 받은 적도, 감독님이 이렇게 걱정을 하신 적도 없었다. 수년간 고생해온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또 감독님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린 것 같다. 이번 경기를 통해 내가 매우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았고 이 운동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스트로급으로 올리면서 걱정이 많았다. 칼더우드와의 경기 후 앞으로 쉽지 않음을 느껴 포기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말은 신장 차이를 극복한다고 했지만 막상 맞서니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경기로 조금의 희망이 생긴 것 같다"고 이제야 속마음을 꺼냈다.

옥타곤에서 처음으로 승리의 맛을 봤고 벼랑 끝에서 탈출했지만 앞으로의 길은 더욱 험난하다. 이길수록 강한 상대가 나타나는 것이 피라미드 구조의 정글, 그녀가 뛰어든 UFC다.

함서희는 "이제 첫 승을 올렸고 그 느낌도 알았으니 천천히 한 단계씩 올라가고 싶다. 오늘 경기만큼 힘들겠지만 조금씩 올라가서 언젠가 정상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으며, 거액의 보너스 사용 용도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가족이나 팀원들에게 쓰고 싶고 특히 언니에게 보답하고 싶다. 나를 위해 쓸 생각은 없으며 마땅히 살 것도 없다. 그런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입금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웃음)"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