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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코미어의 MMA 도전…'불운한 레슬러'는 없다

 


10대 시절 다니엘 코미어는 장래가 촉망되는 레슬링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때 루이지애나주 레슬링 선수권에서 세 차례 정상에 오르는 등 지역 최강자로 명성을 떨쳤다. 패한 적은 1학년 이후 단 두 번, 그것도 부상 위험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총 전적은 101승 9패였으며, 그 중 89승을 폴승으로 따냈다. 대회의 최우수 선수에 두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95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콜비 커뮤니티 대학을 거쳐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레슬링부로 옮겨 활약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는 카엘 샌더슨이 그의 유일한 대항마였다.

대학 졸업 후 코미어는 종목을 자유형으로 바꾸고 -96kg급에서 성공적인 행보를 걸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연속 미국 내셔널 챔피언에 올랐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팬아메리칸 게임과 팬아메리칸선수권을 제패했으며,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인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세계선수권을 5번이나 제패한 전설적인 레슬러 카지모우라트 가트살로프를 준결승에서 만나며 4위에 머물렀다. 동메달의 희망을 갖고 3-4위전에 나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종료 1분을 남기고 포인트를 역전당해 분루를 삼켜야 했다.

2003년 교통사고로 생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딸 카에딘에게 메달을 바치겠다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과도한 체중 감량 탓에 신장에 무리가 와 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이후 그를 레슬링 매트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올림픽 메달 후보로 기대됐었지만, 두 번의 올림픽은 참가한 데에 의미를 둬야 했다.

그렇게 코미어는 불운한 레슬러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레슬링에선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났지만 종합격투기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케인 벨라스케즈, 루크 락홀드, 존 피치 등이 몸담고 있는 '아메리칸 킥복싱 아카데미'에서 레슬링 코치 겸 파이터로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서른이 넘어 처음으로 글러브를 꼈다.

코미어의 적응력은 발군이었다. 종합격투기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레슬링이 탄탄한 데에다, 정상급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격투기를 빠르게 습득했다. 타고난 빠른 움직임과 운동 감각도 한 몫 했다. 잘 넘기면서 잘 맞지 않고 잘 때렸다. 몇 경기 치르지 않았음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영이 매끄러웠고 노련하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중소단체에서 차곡차곡 승수를 쌓던 코미어는 종합격투기 데뷔 1년 만에 스트라이크포스에 입성했고, 전적은 어느덧 8승 무패가 됐다. 그의 8전째 경기는 헤비급 토너먼트 리저브매치였으며, 코미어는 이 경기에서 제프 몬슨에게 승리했다. 당시 토너먼트는 알리스타 오브레임, 파브리시오 베우둠, 안토니오 실바, 조쉬 바넷 등이 참가하며 막강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신인이었던 코미어로선 리저브가 아니고선 낄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대회의 우승자는 다름 아닌 코미어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드라마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4강에 진출한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빠지면서 리저버로 올라온 코미어가 대체자로 투입, 4강에서 안토니오 실바를 KO시킨 뒤 결승에서 조쉬 바넷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토너먼트에서 3승을 거두고 우승하는 과정에서 운으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확실한 실력이었다. 다니엘 코미어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코미어는 그렇게 종합격투기 도전 약 3년 만에 세계적인 중량급 파이터로 올라섰다. 지금까지 수집한 벨트만 세 개. 애초 예상을 초과하는 성공적인 행보였다. 그 시기 스트라이크포스가 UFC로 인수된 것 역시 코미어에겐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레슬링 시절과 달리 운까지 따랐다.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코미어는 UFC로 넘어와 4연승을 질주했다. 그 과정에서 라이트헤비급으로 체급을 내려 완벽히 정착했다. 모든 경기가 압도적이었다. 같은 올림픽 레슬러인 댄 헨더슨을 딱지치기 하듯 바닥에 꽂기도 했다.

이제 그가 넘어야 할 파이터는 단 한명, 마지막 관문이 당시 챔피언이었던 존 존스였다. 당시의 존 존스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존재로,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7차 방어에 성공한 상태였다. 옥타곤에서 존스만 이기면 종합격투기의 정점에 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올림픽에서 맛본 좌절을 보상 받을 기회였다.


그러나 코미어는 존스를 넘지 못했다. 2015년 1월 UFC 182에서 존스와 맞선 코미어는 팽팽한 대결을 벌이다 경기 중반부터 체력이 떨어지면서 판정패했다. 종합격투기 15승 뒤 첫 패배였다. 다들 잘 싸웠고 명승부라며 엄지를 들어 올렸으나 어떤 말도 그에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좋은 기량으로 여러 커리어를 쌓고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던 과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코미어는 올림픽에 이어 새로운 꿈이었던 챔피언 등극마저 실패하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여러 번 내 자신을 다시 일으켜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패배가 날 무너뜨릴 수 없다. 다시 그와 케이지에 설 것이다"며 울먹이는 그의 말에 기자회견장에선 격려의 박수가 나왔다.

한 차례 좌절을 맛봤지만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챔피언 존스가 사생활 중 물의를 일으키며 타이틀을 박탈, 앤서니 존슨과 주인 없는 벨트를 놓고 대결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코미어는 장기인 그래플링을 십분 활용하며 존슨으로부터 3라운드에 항복을 받아냈다.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을 상대로 1차 방어에 성공하기도 했다.

종합격투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UFC 챔피언이 됐지만, 코미어는 자신이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타가 공인하는 라이트헤비급 세계 최강, 자신을 이긴 유일한 남자 존 존스를 아직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미어는 존손을 꺾고 벨트를 허리에 두르자마자 "존 존스. 너를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옥타곤을 빠져나갔다.

코미어가 자력으로 존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선 타이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현재로선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 징계기간을 갖고 있는 존스는 오는 7월 복귀가 가능하며, 복귀전에서 타이틀에 도전할 것이 유력시된다. 존스가 최근 두 차례 타이틀을 잃었지만 두 번 모두 경기력과는 무관한 것으로, 복귀하자마자 챔피언과 대결할 명분은 충분하다.

존스가 돌아올 때까지 챔피언으로 남기 위해선 이틀 앞으로 다가온 2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지켜야 한다. 이미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는 앤서니 존슨이 코미어의 상대다. 1차전에서 완승을 거뒀다지만 현재 분위기는 존슨의 우세로 흘러가고 있다. 코미어가 1차전 이후 어려운 경기를 펼친 반면 존슨은 3경기 연속 KO승으로 기세를 올린 것이 반영됐다. 코미어의 종합격투기 제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