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좀비' 정찬성을 두고 해외 매체나 방송에선 '흥미로운 선수'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옥타곤에 올랐다 하면 항상 예상을 벗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냥 내려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불과 세 경기를 치르고 타이틀에 도전했던 것도 그런 능력 덕이었다.
3년 6개월이라는 긴 공백을 가졌지만, 정찬성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데니스 버뮤데즈라는 까다로운 선수를 상대로 다시 한 번 예상을 뛰어넘는 경기를 선보였다. 경기 전 언더독이었던 만큼 승리 자체가 이변이라 할 수 있는데, 1라운드 KO승으로 이겼다는 점이 놀랍다.
앞서 그가 치른 모든 경기가 그랬듯이 이번 결과 역시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본인은 판정승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적어도 1라운드는 가벼운 잽만 사용할 생각이었다. 경기를 끝낸 공격은 2~3라운드 들어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2승을 거둔 뒤 타이틀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운 그에게 있어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결과다. 승리는 물론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과시했다. 아직 다음 상대가 정해지진 않았으나 경기의 임팩트와 선수의 가치라는 부분을 본다면, 이길 경우 타이틀 도전이 가능할 만한 상대를 만날 것으로 기대된다(이하 일문일답)
- 그동안 경기를 갈구하며 힘들게 자신과 싸워오다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얼마나 감격적인가?
"승리한지 너무 오래 되다보니 내 자신을 의심했던 게 사실이다. '내가 선수로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에 어느 정도 증명이 된 것 같아서 정말 너무 다행이다. 또 내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남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 눈물을 보였는데, 지금까지 거뒀던 다른 승리와 비교했을 때 감동이나 기쁨의 차이가 있는가?
"이번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너무 오랜만이었고 그동안 옥타곤 밖에서 지내며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눈물이 났다."
- 친정 팀의 지도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눈물을 보이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유가 뭔가?
"사실 버뮤데즈와의 경기가 잡혔을 때부터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팀을 나온 뒤 많은 일들을 겪고 느끼면서, 내가 스승님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 때문에 두 스승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만큼 어떻게든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것보단 내 진심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 경기를 영상으로 다시 봤을 때 움직임이 어떤 것 같나? 만족할 만한가?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처음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1분 30초경 펀치를 한 대 제대로 맞고 정신을 차렸다. 크게 맞은 것처럼 보인 펀치엔 충격이 별로 없었는데, 붙었다 떨어지면서 허용한 주먹에 놀랐다."
- 그래도 이전의 움직임과는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많이 연습한 게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예전보단 좀 나아졌지만 완전 불만족스럽다. 많은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단 스텝을 너무 사용하지 못했다. 앞 손으로 거리를 잡고 많이 움직이려 했는데, 실전에서 위험성을 느낀 모양이다. 태클까지 들어와 앞 손이 좀 내려갔다. 넘어가지 않은 것은 성공했다."
- 경기를 끝낸 공격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겠나?
"원래 1라운드는 잽으로만 싸울 생각이었으며, 경기를 끝낸 공격은 2~3라운드에 나올 그림이었다. 압박을 당해 몰리기 시작할 때면 몇 가지 부류가 있는데, 버뮤데즈의 경우 잡아놓기 쉽게 빼는 것 같아서 밀어붙였던 것 같다. 원래는 더 지치게 만들고 겁에 질리게 한 다음 쓰는 공격인데 빨리 나왔다."
- 100점 만 점에 몇 점을 줄 수 있겠는가?
"준비한 것을 실행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10점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만 보면 100점이다."
- 개인적으론 기대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경기가 일찍 끝나 아쉽기도 하다.
"안 보여주기보단 못 보여줬다. 공항 기자회견에서도 말한 부분인데, 1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 해왔던 게 너무 안 나왔다. 스텝과 레슬링, 펀치의 파워, 이 세 가지 위주로 훈련했으나 기술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 자신이 코치이자 파이터가 되어 싸운 첫 경기였다. 어려움은 없었나?
"믿었던 (김)두환이랑 영복이 형이 옆에 있어 좋았다. 두환이가 경기를 진짜 잘 본다. 영복이 형의 레슬링도 도움이 많이 됐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둘 모두 선수가 우선인 터라 항상 같이 할 수 없는 만큼 너무 의지하진 않을 생각이다. 내가 잘 해야 할 것 같다."
- 이번 경기를 통해 느끼고 배운 게 있다면?
"경기의 느낌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스파링과 경기를 따로 봐야 하는데, 구분을 하지 못했다. 스파링에서 했던 것을 경기에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경기에서 되는 게 어떤 것이고 안 되는 게 어떤 건지 이제 확실히 알게 된 만큼 다시 준비하겠다."
- 다음 상대로 본인은 리카르도 라마스를 거론했지만, 컵 스완슨이 더 가능성 있는 게 사실이다. 매체 반응이나 여론도 그렇고.
"상관없다. 버뮤데즈 위에 8명이 있는데 그 중 누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프랭키 에드가도 좋다. 조제 알도와 맥스 할로웨이를 제외한곤 가장 센 선수 아닌가. 기왕이면 랭킹이 높고 강한 선수가 좋다."
- 전에 인터뷰에서 스완슨과의 상성에 대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최두호에겐 쉬울 수 있는데, 내겐 어려운 상대라고.
"그때 내가 그렇게 얘기했었나? 그런 건 신경 안 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와 맞서게 되더라도 내가 똑같이 싸울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상대에 맞게 준비할 수 있다. 자신 있다. 앞서 두호와 맞붙었다는 점이 좀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대한 신경 안 쓰고 싸워야 한다. 먼저 고르기보단 일단 기다려보려고 한다."
- 경기 전 최두호를 따라가는 입장이라고 했는데, 따라간 것 같은가?
"이제 비슷한 위치가 된 것 같다. 귀국 후 연락을 주고받았다. 같이 잘 하자고 얘기했다. 그래야 하는 입장이고 또 그런 관계다."
-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한국 대회를 거론했다. 한국 대회의 메인이벤트에서 타이틀 결정전 정도의 경기를 갖는다면 최상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게 좋을 것 같다. 꼭 겨울이 되기 전에 열렸으면 좋겠다. 다른 선수들에겐 미안하지만 메인이벤트는 내 경기였으면 좋겠다. 작년 한국 대회의 열기를 잊지 못한다. 내가 메인이벤트에 나가서 경기장을 폭발시켜 버리고 싶다. 메인이벤트 전에 미리 폭발시키면 곤란하니까(웃음)."
- 그렇게 되면 과거 당신이 말했던 최홍만의 파워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 해보고 싶다."
- 이번 승리가 당신의 파이터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앞에서 말했듯이, 긴 공백으로 인해 선수로서 가망이 없을까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있다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 이제 후반전을 시작했다."
- 올해 내 타이틀전을 확정짓는 게 목표라고 했었다. 자신 있는가?
"당연하다. 잔부상을 치료하고 한 경기 더 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가 누가 되든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만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 성공적인 복귀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마지막으로 포부 한 마디 부탁한다.
"다시 옥타곤에 들어서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빨리 복귀하겠다. 응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