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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비스핑이 빛났던 최고의 순간들

 


TUF 3 우승, 화려한 UFC 데뷔(2006.06.25)
영국 케이지 레이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으로서 3차 방어에 성공한 비스핑은 2006년 TUF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그는 10승 무패의 기대주로, 토너먼트 세 경기에서 전부 피니시하는 저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포레스트 그리핀, 맷 세라, 라샤드 에반스에 이어 네 번째 TUF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비 미국인 최초의 TUF 우승자로 기록된 비스핑은 화려하게 옥타곤에 입성했다.

UFC 영국대회 흥행의 불을 지피다(2007.04.22)
UFC가 영국에서 처음 이벤트를 개회한 시기는 2002년이다. 이후 UFC는 한동안 영국을 찾지 않다가 2007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대회를 열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비스핑이 있었다. TUF 우승으로 이름을 알리며 옥타곤에서 2연승한 비스핑은 맨체스터에서 열린 UFC 70의 흥행 전면에 섰고, 2라운드 TKO승으로 홈팬들의 응원에 보답했다. 보너스도 받았다. UFC 70은 3800명이 들어찬 첫 대회 UFC 38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1만 5천명 이상이 운집했다. 제대로 흥행에 성공한 UFC는 불과 5개월 뒤 다시 영국에 옥타곤을 세웠고, 그때도 비스핑의 역할은 컸다. 이후 영국에선 매년 대회가 열리고 있다.

자신의 영웅을 넘어서다(2016.02.28)
비스핑처럼 말을 잘하는 선수도 UFC에 흔치 않다. 그는 경기 전 항상 자연스럽고 수준 높은 트래시토크로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린다. 2016년 앤더슨 실바와의 대결 때도 그랬다. 비스핑은 앤더슨 실바가 반도핑 정책을 위반했던 사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리고 그는 경기에서 실바를 이겼다. 그런데 경기 전과 전혀 다른 태도로 눈길을 끌었다. 승리가 확정된 뒤 비스핑은 감격에 복받쳤다. 홈 팸들 앞에서 “커리어를 통틀어 내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실바는 내 영웅이고 가장 존경하는 선수다. 실바의 경기를 보고 입문했는데 그와 경기를 펼쳐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무릎을 꿇고 절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경기 전과 완전히 달랐다.

UFC 미들급 8대 챔피언 등극(2016.06.05)
마이클 비스핑은 장기간 톱10에서 경쟁한 강호다. 그러나 그가 챔피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좋은 실력을 가지곤 있으나 정상에 오르기 조금 부족해 보이는 선수가 비스핑이었다. 그런 그가 UFC 199에서 루크 락홀드를 꺾고 정상을 밟았다. 행운도 따랐고 기회를 잡아내는 능력도 돋보였다. 당시 비스핑은 도전자 후보가 아니었으나 상위권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기회를 잡아 대박을 터트렸다. 약 2년 전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선수를 이긴 터라 의미가 더 컸다. 2006년 TUF 우승으로 UFC에 입성한 비스핑이 10년 만에 챔피언 벨트를 감는 순간이었다. 그는 영국 최초의 UFC 챔피언으로 기록된다.

가장 치욕적인 패배 설욕(2016.10.09)
비스핑은 2009년 7월 12일을 잊을 수 없다. 세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UFC 100에서 너무나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댄 헨더슨의 강펀치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헨더슨이 실신한 비스핑에게 플라잉 파운딩을 시전하는 장면은 상대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둘의 대결은 미국 대 영국을 주제로 한 TUF의 코치 대결이었다. 비스핑은 7년 뒤 한을 풀었다. 챔피언으로서 헨더슨을 영국으로 불러와 설욕에 성공했다. KO패를 그대로 돌려주진 못했으나 고국 팬들 앞에서 복수에 성공하며 방어전을 완수한 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