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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주먹 터지면 끝…댄 헨더슨 방식의 명승부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댄 헨더슨 만큼 많은 명승부를 치른 선수도 흔치 않다. 올림픽 레슬러 출신의 헨더슨은 외모와 행동은 물론 경기 스타일에서도 남성적인 매력이 넘친다. 어떤 누구와 맞붙어도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그의 스타일은 결과와 관계없이 최고의 재미를 보장한다.

상대가 누구든 전략은 같다. 스텝을 활용한 아웃파이팅으로 운영하는 것은 자신의 성향과 맞지도 않고 잘 하는 부분도 아니다. 우직하게 들어가 상대와 정면으로 맞서 뜨거운 주먹을 교환하는 모습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적어도 상대가 너무 빼지만 않는다면 KO승부나 치열한 판정승부는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40대 중반의 나이를 넘기고 있지만, 적어도 그의 주먹만큼은 여전히 동급 최강의 파워를 자랑하며 어떤 강자와도 정면 승부를 벌일 만큼 강한 심장도 여전하다. 헨더슨이 UFC에서 치른 명승부를 꼽아봤다. 헨더슨은 UFC에서 지금까지 총 17경기를 소화하며 9승 8패를 기록 중이다.

對 마이클 비스핑(2009년 7월 UFC 100)
비스핑과의 대결은 댄 헨더슨을 상징하는 경기나 다름없다. 헨더슨은 UFC의 역사적인 100번째 정규대회에 나서 비스핑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비스핑으로선 TKO패는 있지만 KO패는 처음이었는데, 완전히 실신까지 했다. 헨더슨은 그런 비스핑에게 확인사살도 서슴지 않았다. 비스핑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마자 그대로 날아올라 강한 파운딩을 내리 꽂은 것이다. 또 당시 경기는 TUF 9 미국 대 영국 헤드코치간의 대결로 자존심이 걸려있기도 했다. 비스핑이 지금까지 겪은 7패 중 가장 쓰린 패배다. 계속 전진하며 오른손 훅으로 경기를 끝내고 포효하는 모습은 헨더슨이 가장 빛났던 최고의 순간이었다.

對 마우리시오 쇼군 1(2011년 11월 UFC 139)
두 명의 상남자가 부딪친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헨더슨과 쇼군은 25분 동안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대결을 펼치며 UFC의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초반 펀치로 충격을 입힌 헨더슨이 3라운드까지 확실한 우위를 점했으나, 4라운드부터 쇼군의 반격이 거셌다. 당시 헨더슨은 경기 후 "쇼군은 마치 록키 발보아 같았다"며 매우 힘든 경기였음을 털어놓았다. 대회의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는 당연한 결과, 둘의 대결은 2011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경기는 헨더슨이 스트라이크포스에서 예멜리야넨코 표도르를 꺾은 직후 가진 UFC 복귀전으로, 쇼군을 꺾으며 타이틀 도전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對 마우리시오 쇼군 2(2014년 3월 UFN 38)
처음 맞붙었던 2011년에 비하면 무게감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었다. 두 선수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서로와의 첫 대결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최근 성적이 어떠하든, 이 둘이 만나면 명승부가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듯하다. 헨더슨과 쇼군은 두 번째 대결에서도 팬들에게 최고의 재미를 선사했다. 3라운드 초반까지 경기는 완전한 쇼군 페이스였다. 쇼군은 1라운드에 헨더슨을 다운시키며 패배 직전까지 몰아세웠고 2라운드에 다운을 추가했다. 그러나 헨더슨의 맷집과 강한 한방은 언제나 역전승을 부른다. 헨더슨은 클린치에서 떨어지는 순간 폭탄을 작렬시키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 일전이었다.

對 헥터 롬바드(2016년 6월 UFC 199)
펀치의 폭발력이 남다른 두 선수간의 대결이었다. KO로 끝날 가능성이 다분했다. 수세에 먼저 몰린 선수는 헨더슨이었다. 롬바드의 펀치에 고꾸라지며 힘겨운 경기를 펼쳤다. 자칫하면 1라운드에 경기가 끝날 뻔했다. 그러나 헨더슨은 2라운드 들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칙 공격으로 롬바드를 실신시켰다. 롬바드가 자신의 킥을 캐치하자 옆으로 돌려 치는 팔꿈치 공격으로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계약상 마지막 경기에 임했던 헨더슨이 만약 패했을 경우 재계약은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헨더슨은 계속되는 부진으로 은퇴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승리에 대한 절실함과 즉흥적인 센스로 헨더슨은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