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 종합격투기의 역사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전통이 있고, 인기가 가장 높은 메이저 프로모션을 포함해 많은 단체가 왕성한 격투 선진국이자 강국이었다. 일본 선수들이 세계 최고까진 아니었지만 격투 강국 대열에 오른 아시아의 유일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다. 대표적으로 고미 타카노리, 야마모토 노리후미가 세계 경량급을 평정했다.
그러나 일본의 양대 격투 프로모션이라 할 수 있는 프라이드FC와 FEG 체제의 K-1이 무너지며 일본 선수들의 활약도 사그러들었다. 자국에서 훨훨 날던 선수들은 타국에서 열리는 세계무대에 나가자 맥을 못 치고 무너졌다. 이를 두고 거품이 빠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몇 년간 UFC에서 있었던 일본 선수들의 행보를 보면 격투 강국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일본은 2008년부터 총 28명의 선수가 옥타곤을 밟았는데 이들은 총 93전 38승 54패 1무를 기록했다. 승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8명의 선수 중 5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선수는 7명밖에 되지 않았다. 28명 중 정확히 50%에 해당하는 14명이 성적 부진으로 퇴출됐으며, 그 중 7명은 옥타곤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 듯 하지만 부진의 행보는 올해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 UFC와 계약돼있는 일본인 파이터는 총 17명이며, 이들이 2015년 거둔 합산 전적은 7승 10패 2무 1무효에 그친다. 17명의 70%에 해당하는 12명이 2015년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저조한 성적으로 지금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몇몇 선수도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선수의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승률이나 생존률, 보너스 확률 등에서 한국 선수들보다도 크게 뒤진다. 한국은 격투기가 일본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입됐고, 선수들이 활동할 만한 마땅한 단체조차 없을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열악한, 일본에 비하면 확실한 격투 후진국이었다. 일본이 격투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추락한지는 이미 몇 년 됐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부진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올해의 첫 UFC 이벤트에 두 명의 일본인 파이터가 출격한다. 그 주인공은 밴텀급의 타나카 미치노리와 카네하라 마사노리다. 둘은 3일 열리는 UFC 195에 출전해 조 소토, 마이클 맥도널드와 각각 맞붙는다. 첫 테이프를 끊는 게 초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두 선수의 어깨가 무겁다.
타나카와 카네하라는 일본에서도 제법 기대를 받는 파이터다. 옥타곤에 쉽게 입성했다가 쉽게 계약이 해지됐던 선수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일본 밴텀급의 신성 타나카는 지난해 9전 전승으로 UFC에 입성했으며, 데뷔전에서도 승리했다. 상위에서의 압박과 포지션 역전에 특화된 선수로 최고 수준의 그라운드 지배력을 자랑한다. UFC 진출 전에는 PXC 챔피언으로 활약했다.
반면 카네하라는 잔뼈가 굵은 선수다. 2003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해 25승 12패 5무를 기록, 무려 42전의 전적을 쌓았다. 탄탄한 경기력으로 특별히 약점이 없으며 2009년 센고쿠 토너먼트 땐 UFC 타이틀에 도전했던 강자 정찬성에게 승리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UFC 데뷔전에선 5승 4패(1무효)를 기록 중이던 알렉스 카세레스를 넘으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둘 모두 최근 한 풀 꺾인 상태다. 타나카는 지난해 9월 강경호에게 아쉽게 패한 뒤 금지약물 사용까지 발각, 출정 정지 징계를 받고 이제 복귀하는 입장이고, 카네하라는 두 번째 경기에서 하니 야히야에게 분패했다. 둘 모두 아직까지 크게 보여준 게 없는 상황인데, 연패까지 한다면 생존에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란히 강한 선수와 맞선다. 타나카의 상대 조 소토는 15승 4패를 기록 중인 파이터로 지난해 UFC 데뷔전에서 타이틀에 도전한 바 있다. 소토 역시 현재 2연패인 만큼 배수의 진을 치고 타나카와의 대결에 임할 전망이다.
카네하라의 상대는 더 강하다. 마이클 맥도널드는 밴텀급 8위에 랭크된 인물로 총 전적 16승 3패, UFC에서 4승 2패를 기록 중이며 2013년 헤난 바라오와 타이틀을 놓고 대결하기도 했다. 16승 중 14승을 KO나 서브미션으로 챙겼을 정도로 높은 결정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강한 선수와 맞선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기회임을 의미한다. 만약 이긴다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아래에 위치한 선수를 이긴 것보다 더 많은 효과를 누릴 것이 분명하다. 특히 상위랭커와 맞서는 카네하라가 여기에 크게 해당한다. 타나카와 카네하라 모두 일본 선수의 평판은 물론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다. 위기가 기회가 될지는 스스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