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예상이 맞았다. 복싱 세계챔피언 대 킥복싱 세계챔피언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지만 경기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두 선수 모두 왼손잡이의 카운터형 타격가인 터라 상대를 탐색하고 재는 시간이 많았다. 치열한 공방보다는 수 싸움이 많았던 경기였다.
놀라운 점은 승자가 홀리 홈이 아닌 발렌티나 셰브첸코였다는 점이다. 24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UFC on FOX의 21번째 대회에서 셰브첸코는 홈에게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경기 전 배당에 따른 승률은 홀리 홈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홈은 7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점 챔피언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던 부분이 역시나가 됐다.
셰브첸코는 UFC에서 1승 1패를 기록 중인 신예지만 입식타격에서 56승 2패라는 화려한 전적을 남긴 바 있다. 두 선수 모두 타격가로서 경기가 스탠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승부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순수 타격가들의 대결이기에 변수가 있다는 일부 의견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셰브첸코는 카운터 타격을 들고 나왔다. 오히려 체격이 큰 홈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홈의 펀치 대부분은 셰브첸코의 몸에 닿지 않은 채 허공을 갈랐다. 홈은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25분 동안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1라운드에 한 차례 다운을 성공시킨 게 거의 유일하게 눈에 띄는 공격이었다.
1라운드에 강한 펀치를 허용한 셰브첸코는 2라운드부터 안정된 타격으로 경기를 리드해나갔다. 펀치를 뻗은 횟수 자체는 홈이 많았지만, 셰브첸코는 높은 성공률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유효 공격으로 포인트를 꾸준히 쌓았다. 특히 오른손 카운터가 효과적이었다. 3라운드에는 테이크다운에 이은 상위포지션에서의 공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채점 결과는 세 명의 부심 전원 49:46 셰브첸코의 승리. 킥복싱 세계챔피언의 세브첸코가 종합격투기 도전 이래 가장 가치가 큰 커리어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7위 입장에서 2위를 꺾은 만큼 적지 않은 랭킹 상승이 예상되며, 그것은 곧 타이틀 도전을 노려볼 위치에 올라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 후 셰브첸코는 자신의 팀과 가족, 고국 팬들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모든 것을 쏟는 것이 전략이었고, 난 그것을 해냈다"며 "아만다 누네스는 스탠딩과 그라운드 모두 좋은 상대다. 타이틀을 걸고 재대결을 원한다"며 타이틀 도전 의지를 밝혔다.
셰브첸코는 지난 3월 UFC 196에서 아만다 누네스와 맞붙어 접전 끝에 판정패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당시 누네스의 체력이 떨어진 것을 지적하며, 경기가 5라운드로 치러졌으면 자신이 이겼을 것이라고 말한다. 누네스는 셰브첸코를 이긴 뒤 UFC 200에서 타이틀에 도전, 미샤 테이트를 쓰러트리며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2경기 연속 패배한 홈은 "셰브첸코는 터프한 선수고 그녀의 카운터펀치 전략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코치진이 준비도 잘 해줬다. 그러나 내가 잘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