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라이트헤비급에서 핵주먹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앤서니 존슨. 2014년 UFC에 입성한 이래 실적이 워낙 좋다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라이트헤비급에서 활동한 것만 같아 보이지만, 그는 원래 웰터급 파이터였다. 2007년 UFC에 데뷔해 2012년 계약이 해지될 때까지 6승 4패의 전적을 남긴 바 있다. 즉 2014년 UFC와 계약한 것은 두 번째 옥타곤 진출이었다.
놀라운 점은 성적이다. 체급 상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체급을 올릴수록 덩치가 크고 파워가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경쟁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체급 전향이라 하면, 열의 아홉이 하향이다. 선수 개인의 생각에 따라서 한 체급을 올리는 경우는 간혹 볼 수 있지만 존슨처럼 두 체급을 올리는 선수는 전례에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존슨의 최근 행보를 보자면, 과거 웰터급에서 활동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경기력이 인상적이다. 웰터급에서 활동할 때와 비교해 현재 두 배 강한 선수들과 경쟁하고 있다면, 본인은 세 배는 강해진 듯하다. 출전할 때마다 1라운드 KO승이 기대되는 파이터가 존슨이다.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을 1라운드에 잠재워버렸고 지미 마누와는 1라운드를 넘겼지만 2라운드 시작 후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렇다. 대부분의 프로 파이터들이 경쟁력 상승을 위해 극한의 감량고를 참아가며 가능한 낮은 체급을 택하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존슨은 오히려 체급을 유유히 올리며 감량시대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과거 웰터급에서 활동할 때보다 라이트헤비급·헤비급에서 활동했을 때의 성적이 더 좋다. 타이틀과 거리가 있었던 웰터급 시절과 달리 라이트헤비급으로 올린 뒤엔 이미 타이틀에 한 차례 도전했으며, 현재는 재도전을 노리고 있다. 어쩌면 종합격투기를 시작할 때부터 라이트헤비급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을 수도 있다.
0.1톤의 체중으로 웰터급 선택…큰 욕심이 부른 화
존슨은 과거 경기 때마다 한계를 경험했다. 감량은 모든 선수들이 겪는 것이고, 쉽게 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지만 존슨은 일반적인 수준을 훨씬 초과한 경우다. 웰터급 치고 큰 187cm의 신장과 우람한 골격으로 평소 체중이 약 100kg이나 됐던 탓에 20kg 이상을 감량했다. 웰터급 규정 체중은 170파운드(77.11kg). 보통 중량급일수록 감량폭 역시 큰 편인데, 대부분이 10kg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 20kg 이상을 짜내는 존슨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좋게 표현해 능력이지, 경기 때마다 인간으로서 한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한 이유는 앞서 거론한 대로 경쟁력 상승에 있다. 보통의 웰터급 선수들보다 체격이 크기에 계체만 통과하면 유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었다. 혹자는 너무 힘들게 체중을 빼면 힘을 못 쓸 것이라고 하지만, UFC의 계체는 전날 진행된다. 경기까지 주어지는 약 24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리면서 체중도 상당 부분 회복 가능하다. 이에 계체를 당일 경기 직전에 시행하는 종목보다 감량의 폭이 크다.
존슨이 20kg이 넘는 체중을 잘 감량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웰터급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평소 99kg의 체중으로 생활한다고 밝힌 존슨은 경기 때만 되면 웰터급에 맞추기 위해 감량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초등학생 아이의 체중에 해당하는 무게를 떼어내지 못해 계체에 실패하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존슨은 2012년을 맞으며 미들급으로 전향했다. 경쟁력은 조금 양보했지만 감량고와 작별을 선언하고 여유롭게 계체를 통과할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미들급의 규정 체중은 185파운드(83.91kg). 여전히 남들보다 많은 약 16kg을 감량해야 했다. 그러나 7kg이나 덜 줄이고 계체를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놓였을 것이다.
미들급으로 출전한다는 사실에 나사가 너무 풀렸던 것일까. 비토 벨포트와 붙기로 한 미들급 데뷔전에서도 계체에 실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초과한 체중 폭이 적지도 않았다. 무려 11파운드(5kg)나 초과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5kg 초과는 UFC는 물론 세계 어떤 프로 격투 단체에서도 보기 드문 초유의 경우다.
경기 취소가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대인 벨포트는 존슨이 경기 당일 93kg만 넘지 않는다면 경기를 수락하겠다고 했다. 당시 경기는 벨포트에게 14년 만에 브라질에서 갖는 경기로 의미가 남달랐다. 대전료가 삭감되긴 했지만 어쨌든 존슨으로선 다행이었다. 그렇게 치러진 경기의 결과는 존슨의 서브미션패. 그리고 얼마 뒤 들려온 소식은 UFC에서의 퇴출이었다. 계속된 계체실패가 초래한 안타까운 결과였다.
본격적인 중량급 도전, 헤비급에서도 통하다니
존슨의 상습적인 계체실패는 UFC 밖에서도 이어졌다. 새 활동 무대로 타이탄FC라는 중소단체에 진출했는데, 데뷔전에서 계체에 실패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체중 감량에 있어 미들급보다 여유가 있는 195파운드(-88.45kg) 계약체중 매치였음에도 체중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경기에선 승리했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미들급 체중마저 버겁게 다가오자 존슨은 급기야 라이트헤비급 전향을 택했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생각도 됐지만 두 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중량급 전장에서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UFC 계약해지 이후 3연승. 존슨은 그 실적으로 WSOF란 대회에 진출했다.
WSOF에서의 활동은 파격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라이트헤비급만 해도 무려 두 체급을 올린 것인데, 그것도 모자랐는지 헤비급에 도전장을 내밀어 D.J. 린더만과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격침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다시 라이트헤비급으로 내려와 마이크 카일을 무찌른 존슨의 최근 성적은 6연승이었다.
존슨이 중량급 파이터로 변신해 눈에 띄는 실적을 쌓자 UFC는 2014년, 방출 약 2년 만에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무엇보다 계체를 실패할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옥타곤 복귀전 상대는 당시 랭킹 4위였던 필 데이비스였다. 존슨의 경우 과거 웰터급 상위권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기술적인 수준이 있고, 최근 인상 깊은 경기력을 고려해 비교적 강한 상대를 만난 격이었다.
그러나 존슨의 경쟁력은 예상보다 높았다. 강호 데이비스를 우월한 기량으로 무난히 넘어섰다. 그 뒤에는 베테랑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에게 KO승을 거뒀는데, 44초 만의 압살이었다. 마치 몬스터가 인간을 폭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과거 세계 최상위권에서 경쟁하던 호제리오 노게이라는 존슨 앞에서 너무도 처참히 무너졌다.
존 존스와 대등한 대결을 펼친 바 있는 강자 중의 강자 알렉산더 구스타프손도 존슨의 펀치에 무너졌다. 구스타프손은 자신의 고국 스웨덴에서 1라운드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타이틀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택한 체급 상향이 신의 한수가 되고 있었다.
존 존스·다니엘 코미어와 경쟁
예상대로 존슨은 타이틀 도전권을 거머쥐었다. 그의 주먹이 제왕이라 불리는 존스에게 통할지도 기대됐다. 지난해 5월 열린 UFC 187이 그 무대였다. 그러나 대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존스가 뺑소니 사고로 물의를 일으키며 타이틀이 박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UFC가 마련한 대책은 존슨 대 코미어의 타이틀 결정전이었다. 상대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웰터급에서 두 체급을 올려 챔피언에 도전하는 경우는 UFC 역사상 존슨이 최초였다.
존슨은 UFC에 복귀한 뒤 첫 패배를 맛봤다. 올림픽에 출전했을 정도로 레슬링이 뛰어나고, 그런 기술을 종합격투기에 잘 접목시킨 코미어는 존슨이 스탠딩에서 주먹을 휘두를 틈을 주지 않았다. 쉴 새 없는 그래플링 공격으로 압박했고, 결국 3라운드에 존슨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지미 마누와를 누르며 전열을 정비한 존슨이 다시 타이틀 전선에서 경쟁한다. 오는 31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 뉴왁 프루덴션 센터에서 열리는 'UFC on FOX 10에서 라이언 베이더와 대결한다. 현재 2위인 그가 3위인 베이더를 꺾으면 타이틀 도전에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승리한다면 다음 경기는 최소한 타이틀 도전자를 가리는 결정전이 될 전망이다.
베이더 역시 코미어와 마찬가지로 엘리트 레슬러 출신이다. 대학교 시절 NCAA 디비전 1에서 활동했고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존슨의 승리를 점친다. 네티즌들이 예상하는 존슨의 승률은 80% 이상이고, 승리할 경우 1라운드 KO승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미어이기에 그런 전략이 통했던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코미어 외에 레슬러 출신의 어떤 파이터도 존슨을 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존슨은 타이틀전도 좋지만, 한 차례 무산된 존스와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다. "코미어와 다시 붙고 싶긴 하지만 존 존스를 더 원한다. 그가 원래 챔피언이었고 최고의 챔피언이다. 그를 상대로 내가 어떤 경기력을 발휘할지 궁금하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