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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가누의 인생역전

UFC에서 인생역전 스토리로 주목을 받은 대표적인 파이터는 글로버 테세이라다. 40대에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그는 불법체류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추방된 뒤 영주권을 획득했으며, 이후 UFC에 도전해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많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폭력에 얼룩진 생활을 하다가 수감생활까지 했던 데릭 루이스도 많은 주목을 받은 파이터로 꼽힌다.

하지만 '인생역전'이라는 표현에 이 선수보다 잘 부합하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헤비급 챔피언 프란시스 은가누가 그 주인공이다.

은가누는 국민 소득 1300 달러 수준의 빈국 카메룬 바티에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한 나라인터라 복지가 거의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교육비부터 개인이 부담해야 했으며, 은가누처럼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일을 해야만 했다. 

가난보다 은가누를 힘들게 했던 가정환경이었다. 그의 부친은 그 지역에서 이름 난 폭력배였고 집안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잦았다. 부친의 영향으로 은가누는 멋모른 채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6세 때 그의 부모는 이혼을 했고, 자녀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그는 모친과 형제들과 친척집에 떠돌이 생활을 하며 힘겹게 살아나갔다.

은가누는 그때부터 파이터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처럼 절대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타고난 신체적인 능력을 꽃피워 복서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마을에 있는 몇몇 갱단의 유혹이 있었지만 뿌리쳤다.

물론 그때만 해도 워낙 환경이 어려웠고, 운동할 여건도 되지 않았기에 그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은가누는 10세 때부터 모래광산에서 힘든 노동의 시기를 보냈다. 하루 종일 강의 바닥에 있는 모래를 퍼내 트럭에 싣는 고된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생활을 하고 학교를 가기 위해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후에는 채석장에서도 땀을 흘렸다.   

복서가 되고 싶었지만 고향에서는 꿈을 실현할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 카메룬의 항구도시 두알라로 떠났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시간이 날 때면 복싱 글러브를 꼈다. 그러나 목표인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엔 시설, 트레이너, 파트너 등 모든 여건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는 목숨 건 큰 시도를 하게 된다. 카메룬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가 정한 곳은 프랑스였다.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카메룬 북쪽 국경을 넘어 니제르와 알제르를 통과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모로코에 발을 들인 뒤 스페인으로 가는 것은 더 험난했다. 수많은 난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기는 멜리야 국경 철조망을 맨손으로 넘었다. 멜리야는 모로코에 있는 작은 스페인으로 불린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스페인 본토를 밟았다. 

일곱 번째 시도 만에 스페인으로 건너간 그는 불법 체류자로 잡혀갔지만 다행히 석방돼 그가 바라던 프랑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은가누는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었다. 마땅한 거처가 없던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숙이었다. 꿈이 있던 그에게 운이 따랐다. 자원봉사 단체의 제안으로 일을 할 기회를 얻었다.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 제공이었다. 주방에서 커다란 손으로 야채를 썰었다.

그리고 근처에 MMA 체육관이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한 은가누는 친구의 소개로 체육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은 가진 게 없지만 챔피언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 그의 우상은 마이크 타이슨이었고 복싱에서 꿈을 펼치려는 마음이었으나 트레이너였던 로페스가 은가누의 가능성을 보고 MMA에 도전하도록 은가누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페스는 은가누에게 훈련 용품을 지급했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것이 은가누 MMA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술이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열정으로 실력이 빠르게 성장했다. 마침내 2013년 11월 MMA에 데뷔전에 나서게 됐고, 2015년 12월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의 옥타곤에 들어서 첫 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리고 2021년 그는 3월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챔피언에 등극한 직후 땀이 마르기도 전에 그는 "어렸을 때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 있다. 언젠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 내 잠재력을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하는 것이었다. 밑바닥 출신인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기회가 온다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고. 이제 위대한 업적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은 있지만 은가누 같은 사람은 드물다. 아무것도 없던 정도가 아닐뿐더러 발전적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은가누는 "처음 시작할 땐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하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가지고 싶은 게 많아진다. 목적은 필요한 걸 모으는 게 아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시작한 꿈을 완성하라"라고 강조한다.

그는 카메룬의 어린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처럼 힘든 길을 가지 않긴 바란다. 그는 "먼저 가족을 돕고 싶고, 그 다음은 나처럼 의사 등 여러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내가 꿈을 이루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은가누는 UFC에서 번 돈을 카메룬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중이다. 프란시스 은가누 재단을 세우고 체육관을 열어 복싱과 주짓수 등을 가르치고 있다. 본인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다음 세대들에겐 그걸 물려주고 싶지 않다.